나는 풀코스를 달린다

나는 풀코스를 달린다
42.195km. 숫자로 보면 압도적이다.
처음 그 숫자를 목표로 세웠을 때, 솔직히 말하면 실감이 나지 않았다.
42km가 어떤 거리인지 몸이 알지 못했으니까.
근데 지금은 안다.
그리고 그 거리를 달리는 방법도 안다.
나는 1km를 달린다.
42km는 없다. 오직 1km만 있다
출발선에 선다.
42km가 앞에 있다.
근데 나는 그 숫자를 보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게 아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눈앞의 1km만 보인다.
몸이 터득한 것이다.
1km를 달린다.
끝나면 다시 1km를 달린다.
매번 새롭게 리셋한다.
이전 1km는 이미 지나갔다.
다음 1km는 아직 오지 않았다.
지금 이 1km만 존재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42km가 끝나 있다.
풀코스를 달리는 사람이 실제로 달리는 거리는 42km가 아니다. 1km를 42번 달리는 것이다. 매번 새롭게, 매번 처음처럼.
달리는 동안 나를 관찰한다
1km마다 리셋하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나는 지금 감당할 수 있는 상태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세 가지를 확인한다.
첫째, 심박수. 가민이 알려주는 숫자가 어디에 있는지 본다. 너무 높으면 몸이 이미 한계를 넘어가고 있다는 신호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둘째, 페이스. 지금 내가 달리는 속도가 계획한 것과 얼마나 다른지 확인한다. 페이스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찾는다.
셋째, 몸 전체의 통증 스케일.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무릎인지, 발목인지, 허벅지인지. 통증이 버틸 수 있는 수준인지, 아니면 멈춰야 하는 신호인지. 숫자로 환산한다. 지금 이게 3인가, 7인가.
이 세 가지가 답을 준다. 감당할 수 있다. 혹은, 페이스를 낮춰야 한다.
그렇게 1km마다 나를 점검하며 달린다.
삶도 그렇게 달리고 있다
달리면서 깨달은 게 있다.
인생도 42km처럼 보일 때가 있다. 앞에 남은 거리가 너무 많아서, 전체를 보면 숨이 막힌다. 이 블로그가 언제 의미 있는 수익이 될까. 하고 싶은 일들이 언제 이루어질까. 지금 이 허우적거림이 언제 끝날까.
전체를 보면 압도된다.
근데 달리기가 가르쳐줬다. 전체를 볼 필요가 없다. 지금 이 1km만 보면 된다.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만.
그리고 매번 리셋한다.
어제의 실패는 이미 지나간 1km다. 내일의 불안은 아직 오지 않은 1km다. 지금 이 순간만 달리면 된다.
나는 지금 감당할 수 있는 상태인가?
이 질문을 달리기에서만 하지 않게 됐다. 힘든 날, 에너지가 바닥난 날, 포기하고 싶은 날 — 나는 이 질문을 꺼낸다. 심박수를 확인하듯 마음을 확인한다. 통증 스케일을 재듯 감정을 측정한다.
감당할 수 있다. 그럼 계속 간다.
페이스를 낮춰야 한다. 그럼 낮춘다. 멈추는 게 아니다.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결승선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을 것이다
5월 3일, BMO 밴쿠버 마라톤 출발선에 선다.
42km가 앞에 있을 것이다. 근데 나는 그 숫자를 보지 않을 것이다. 그냥 첫 번째 1km를 볼 것이다. 그리고 달릴 것이다.
1km가 끝나면 리셋한다. 또 달린다.
심박수를 확인하고, 페이스를 살피고, 몸 전체의 통증 스케일을 잰다. 감당할 수 있다. 계속 간다. 페이스를 낮춰야 한다. 낮춘다. 그렇게 1km씩, 42번을 달린다.
그러다 보면 결승선이 나타날 것이다.
나는 풀코스를 달린다. 하지만 실제로는 언제나 1km를 달릴 뿐이다. 매번 새롭게, 매번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그리고 그게, 42km를 완주하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인생도 그렇게 완주할 수 있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BMO 완주 후에 이 글을 다시 꺼내서 과거형으로 업데이트하면 전후 스토리가 완성되는 글이 될 것 같아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