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구입

경제적으로 완전 부유한 편이 아니라 쇼핑에 제한이 많다. 그런데 걷기를 하다가 시간이 아까워 달리기를 하게 되었다. 처음엔 그냥 아무 운동화나 신고 달렸는데, 어느 날 함께 달리자던 사람들이 하나씩 달리기 운동화를 사면서 내게도 권하는데 아는게 없으니 그냥 발바닥이 높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신발을 구입했어요.
그게 나의 첫 달리기 운동화였고, 지금도 그 운동화는 비가 올 때 꼭 달려야할 때 그 신발을 신는다.
그 뒤로 나의 운동화는 나의 달리기 만큼이나 다양해졌다.
나는 오랫동안 나를 마지막 순위에 뒀다
언젠가 선배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마흔이 넘어서 처음으로 자기를 위한 신발 한 켤레를 샀다고.
그냥 운동화였다. 비싼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의 부탁도, 누군가를 위한 선물도 아닌 —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 고른 신발. 근데 그게 생애 처음이었다고 했다.
나는 웃지 못했다.
웃어넘기기엔, 그 말이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나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어떻지?
마음이 먼저 흔들렸다
갱년기가 왔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였다. 어느 날부터 뭔가 조금씩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에너지가 예전 같지 않았다. 한때 나를 움직이게 했던 열정이라는 것이, 누가 불을 줄이듯 조용히 작아지고 있었다. 딱히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닌데,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거리가 생겨 있었다.
그때 이런 생각이 스쳤다.
지금 이 상태로 더 나이가 들면, 나는 어떻게 살까.
공포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작은 각성이었다. 이대로 흘려보내면 안 되겠다는 감각.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나를 위해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 아주 오래간만에, 어쩌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드는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를 위한 첫 번째 선택
달리기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러려면 신발이 필요했다. 시계도 필요했다. 둘 다. 그 결정을 내리는 순간, 선배의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다. 마흔이 넘어 처음으로 자기를 위해 신발을 샀다던 그 말.
나도 지금 그러고 있구나.
처음엔 할인 매장을 찾아갔다. 몇 번이나 갔다. 둘러보고, 집어 들어보고, 가격표를 확인하고. 그런데 어느 순간 그냥 느껴졌다.
이건 아니다.
싸게 사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나를 위한 첫 번째 선택인데, 눈앞에 있는 걸 그냥 집어 드는 건 뭔가 맞지 않았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나는 그 순간 처음으로 느꼈다. 나를 위한 것이라면, 나는 조금 더 진지하게 골라야 한다고.
온라인으로 눈을 돌렸다. 평소에 눈여겨봐 두었던 것들, 좋지만 비싸서 망설였던 것들. 할인 타이밍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제대로 된 신발과 시계를 손에 넣었다.
택배 상자를 열던 그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별것 아닌 것 같은데, 가슴 어딘가가 따뜻했다.
나는 물건을 사는 게 아니었다
지금도 할인 매장을 간다.
좋은 신발이 있나 둘러보고, 온라인도 챙긴다. 평소에 눈여겨봐 두고, 할인 타이밍이 오면 산다. 남들 눈엔 그냥 알뜰한 쇼핑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근데 나는 안다.
나는 물건을 사는 게 아니다. 나는 지금 행복을 사고 있다. 건강을 구입하고 있다. 오랫동안 나를 마지막 순위에 뒀던 사람이, 조금씩 나를 첫 번째 자리로 옮겨오는 중이다.
마흔이 넘어 처음 자기를 위한 신발을 샀다던 선배. 처음엔 그 이야기가 짠했다. 근데 지금은 다르게 보인다. 그 선배는 그때라도 시작했다. 늦은 게 아니었다.
나도 그랬다.
오랫동안 나를 마지막 순위에 뒀다. 의식하지도 못한 채로, 아주 오랫동안. 근데 갱년기의 바닥에서, 열정이 식어가는 것이 두려워졌을 때, 나는 처음으로 나를 첫 번째 자리에 앉혔다.
신발 한 켤레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그 한 켤레가 나를 바꾸고 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달리가 어느새 1년 8개월이 되었다. 그리고 나의 마일리지는 점점 늘어나고 새로운 도전을 계속 만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