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있던 아이

나는 골망도 없는 흙바닥 위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이른 아침, 어른들이 조기 축구를 하는 동안 나는 골대 뒤에 서 있었다.
제대로 된 축구공은 그 어른들 것이었다. 축구화 같은 건 없었다.
그냥 운동화였고,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냥 신고 있던 신발이었다.
골대를 벗어난 공이 내 쪽으로 굴러오면, 나는 있는 힘껏 앞으로 차서 돌려보냈다.
그게 전부였다. 근데 그게 좋았다.
우리끼리 공을 찰 때는, 그 당시엔 가죽 공이 아니었다.
고무공에 실로 두르고 그 위에 5각형 조각을 뭔가를 붙여서 축구고 흉내를 낸 공이 전부였다.
그나마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실이 터지고 공의 한쪽이 뾰죽 불러나와 터져버린다.
그런 시절에 어른들이 시키지 않아도 볼보이를 하면 골대를 넘어온 공을 앞으로 보내면 어른들은 좋아하셨다.
물론 나는 내가 좋아하는 공을 맘껏 찰 수 있었다.
그것도 어른들이 정식 게임을 하기전 몸푸는 동안에 일어나는 일이었다.
물론 나도 나중에 그 팀에서 축구를 하게 되었고 함께 지역 대회에 대표로 나가기도 했었다.
함께 했던 선배들 중 일부는 체대를 갔고 나도 불렀지만 나는 다른 전공을 선택했다.
발바닥에 공이 닿는 감각. 공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순간. 시골 아침의 흙먼지. 그 단순한 것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그때부터 축구라는 것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선수였던 시절
초등학교 4학년, 나는 학교 대표 선수가 되었다.
그 이후로 대학에 가기 전까지 줄곧 선수였다.
학교 대표, 지역 대표. 공을 차는 것이 곧 나였던 시절. 공부도 어느 정도 잘 해야만 했다.
부모님의 허락을 받지는 않았어도 공부를 그럭저럭해야만 모든게 무사했던 때였다. 아침보다 운동장이 먼저였다. 밥 먹는 것보다 축구가 먼저였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운동장에서 밥도 먹지 않고 이팀 저팀 축구를 했었다.
수업 시간에 졸리다가도 축구 생각만 하면 소름이 돋고 잠이 확 달아나기도 했었다.
일반 수업 시간엔 헤롱거리다가도 체육 시간엔 엄청 팔팔해졌다. 물론 체육 시간이 끝나면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차분해졌다. 별을 좋아해서 어릴 때 천체 망원경을 혼자 만들기도 했었다. 그래서 천문학을 공부할 수 있는 과를 찾다가 우선 물리학을 하면 대학원은 천문학 쪽으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물리학을 선택했지만, 아니었다. 너무 어려웠다. 별을 좋아하는 것이었지, 공부를 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뒤늦게 길을 잃었다.
그런데 대학은 물리학을 선택했다. 축구와는 전혀 다른 세계. 선수의 삶은 그렇게 조용히 끝났다. 아쉬움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미련보다는 새로운 삶이 앞에 있었다. 축구는 그때부터 취미가 되었다.
취미여도 괜찮았다. 여전히 좋았으니까.
주일 저녁의 축구
캐나다에 와서도 축구는 계속됐다.
일주일에 한 번, 주일 저녁. 그게 내 축구였다. 엘리트 선수 시절처럼 치열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한 시간이 한 주를 버티게 해주는 무언가였다. 운동화 끈을 묶고, 그라운드에 발을 디디는 순간만큼은 여전히 그 흙바닥 위의 아이와 다르지 않았다.
그 리듬이 오래 갈 줄 알았다.
COVID가 모든 걸 바꿨다
2020년, 세상이 멈췄다.
주일 저녁 축구도 멈췄다. 처음엔 그냥 잠깐이라고 생각했다. 몇 주, 길어야 몇 달. 그런데 몇 달이 지나도 일상은 돌아오지 않았고, 나는 그 사이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살이 쪘다. 천천히, 눈치채기 어려운 속도로. 근육은 더 빠르게 사라졌다. 쓰지 않는 근육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줄어든다는 걸 그때 몸으로 배웠다. 어느 날 거울을 보니, 낯선 몸이 서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스스로를 “운동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은 그냥 쉬고 있는 것뿐이라고.
부상, 그리고 내려놓음
팬데믹이 끝나고 다시 축구를 시작했다.
몸은 예전 같지 않았다. 근육이 줄어든 채로 예전과 같은 강도로 움직이려 했으니, 결과는 뻔했다. 부상이 왔다. 작은 것들이 쌓이더니 결국 몸이 버티질 않았다.
나는 그때 조용히 결정했다. 더 이상 억지로 붙들지 않겠다고.
선수 시절부터 수십 년을 함께한 것을 내려놓는 일이었다. 극적이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선언하지도 않았다. 그냥 어느 주일 저녁, 나가지 않았다. 그 다음 주도, 그 다음 주도.
그렇게 끝났다.
바닥이라는 것
바닥이 뭔지 몰랐다. 아니, 내가 바닥에 있다는 것도 몰랐다.
크게 무너진 것이 아닌줄 알았따. 그런데 눈물을 자주 흘리게 되더라고 그래서 갱년긴가 했지만 그보다는 더 깊은 절망에 빠진 나를 발견했다. 하지만 그냥 발견만 한 것이었다. 그냥 그 자리에서 무기력했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따.몸을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골대 뒤에 서서 공을 기다리던 그 설렘이, 언제부터인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그게 내 바닥이었다.
어떻게 이 바닥에 헤어날 것인지 생각할 힘이 없었다. 그냥 그 바닥에서 울고 있었다. 몸부림을 쳐보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외부에서 볼 때는 그냥 그 자리에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바닥으로 쉬지 않고 침몰하고 있었다.
슬프지만 언제나 처럼 잘 참고 있었다. 그러면 안되었지만 나는 그랬다.
속으로 계속 울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없다.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지도 몰랐다.
아픈데 어떻게 해야하는지 몰랐다.
흙바닥에서 공을 처음 찼던 아이가, 이제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