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우적거림

나는 아프다.
지금도 아프다. 이 말을 쓰면서 잠깐 망설였다. 괜찮은 척, 이제 다 나아진 척 쓰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근데 그건 이 글이 아니다. 이 공간은 그런 글을 쓰는 곳이 아니니까.
나는 아팠고, 지금도 아프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 이전과 지금, 똑같이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 같지만 그 허우적거림의 결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걸 오늘 쓰려고 한다.
인생을 돌아봤을 때, 성공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됐다.
걸어온 길을 천천히 훑어봤다. 어린 시절, 꿈꿨던 것들, 선택했던 것들, 포기했던 것들. 그 긴 여정을 돌아보는데 문득 이런 게 느껴졌다.
성공이라는 단어가 없다.
화려한 실패도 아니었다. 극적인 좌절도 아니었다. 그냥 조용히, 꿈이 막히면 다른 길을 선택했고, 그 길이 또 막히면 또 다른 길을 찾았다. 그렇게 살아왔다. 나쁘지 않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성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알았다.
내 안에 층층이 쌓여진 것들이 있다는 것을. 실패에 대한 눈물의 감정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다는 것을. 수면 아래에 잠긴 빙산처럼,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크고 무거운 것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잊은 게 아니었다. 그냥 덮어두고 살아왔던 것이었다.
그 감정들과 처음으로 제대로 눈을 맞췄을 때, 나는 울고 싶었다. 아니, 실제로 울었다. 오래된 감정들이 층층이 쌓인 채로 거기 있었다. 아무도 몰랐던 그 눈물들이.
포기는 실패가 아니었다
돌아보면, 나는 꽤 많은 것을 포기했다.
꿈꾸던 일들이 있었다. 간절히 원했던 방향들이 있었다. 근데 현실의 벽 앞에서, 때로는 경제적인 이유로, 때로는 타이밍이 맞지 않아서, 때로는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 그 꿈들을 내려놓고 다른 길을 택했다.
그때는 그게 실패인 줄 알았다.
포기했다는 것 자체가 내 안에 패배의 감정으로 쌓였다. 그래서 인생을 돌아봤을 때 성공이라는 단어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포기의 순간들만 남아 있었으니까.
근데 지금은 다르게 보인다.
포기할 줄 아는 것도 능력이다. 막힌 길 앞에서 더 이상 소모되지 않고 방향을 돌리는 것, 그게 사실은 삶을 이어가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는지 모른다. 무너진 벽을 붙들고 거기서 평생을 보내는 것보다, 다른 문을 찾아 걷는 것이 오히려 용기였는지 모른다.
포기는 끝이 아니었다. 방향 전환이었다.
성공한 삶이란 한 번도 포기하지 않은 삶이 아니라, 포기하면서도 계속 걸어온 삶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 인생에도 조용한 용기들이 여기저기 숨어 있었다. 나는 그냥 그것들을 실패라고 이름 붙이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전의 허우적거림과 지금의 허우적거림은 다르다
허우적거린다는 건 여전하다.
삶이 갑자기 쉬워진 것도 아니고, 몸이 완전히 나은 것도 아니고, 마음이 늘 평온한 것도 아니다. 만성피로가 달리기로 나아지고 있지만, 아직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나이가 들면서 찾아온 갱년기의 무게도 여전히 어딘가에 남아 있다. 나는 여전히 허우적거린다.
근데 그 허우적거림의 결이 달라졌다.
이전엔 삶 자체에 매몰되어 있었다. 방향도 없이 그냥 버티는 것. 오늘을 넘기는 것. 파도에 쓸려가면서 그냥 가라앉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는 것. 거기엔 길이 없었다. 그냥 생존이었다. 교회에서 졸음을 버티지 못하고, 공항 가는 길에 운전이 무서웠던 그 시절. 하루하루가 그냥 버텨내야 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지금의 나는 허우적거리면서도 길을 찾고 있다. 꿈꾸던 일들이 여러 이유로 막혔을 때 그냥 포기하고 다른 길을 택했던 사람이, 이제는 조금 안정된 자리에서 다시 생각으로 길을 모색하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가고 싶은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변화가 작아 보여도, 나한테는 크다. 아주 크다.
달리기가 가르쳐준 것
달리기를 하면서 이런 걸 배웠다.
20km를 달릴 때, 중간쯤에 반드시 고비가 온다. 몸이 무겁고, 숨이 차고, 그냥 멈추고 싶은 순간. 그때 억지로 버티는 게 능사가 아니다. 페이스를 조금 낮추고, 호흡을 고르고,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이면 어느 순간 다시 리듬이 찾아온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무조건 버티는 것이 강함이 아니다. 때로는 속도를 늦추고, 때로는 방향을 바꾸고, 때로는 지금 이 길이 아니라고 판단해서 멈추는 것 — 그것들이 모두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다.
포기할 줄 아는 것, 방향을 돌릴 줄 아는 것. 그게 실패가 아니라 삶을 이어가는 지혜라는 걸, 나는 달리면서 조금씩 배우고 있다.
좌절하더라도, 지금은 소망하며 간다
솔직히 말하면 두렵다.
또 막힐 수도 있다. 또 다른 길을 선택해야 할 수도 있다. 층층이 쌓인 실패의 감정 위에 또 하나가 얹힐 수도 있다. 그걸 모르지 않는다. 살면서 여러 번 그랬으니까, 또 그럴 수 있다는 것쯤은 안다.
근데 지금은, 그래도 소망하며 가고 있다.
이전엔 소망이 없었다. 그냥 오늘을 버티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일을 기대하고 있다. 다음 달리기를 기대하고, 가고 싶은 방향을 기대하고, 아직 오지 않은 나의 시간을 기대한다.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허우적거림에도 단계가 있다.
아무 방향 없이 가라앉지 않으려 버둥거리는 단계가 있고, 허우적거리면서도 길을 찾는 단계가 있다. 나는 지금 두 번째 단계에 있다. 아직 헤엄을 치는 건 아니다. 여전히 물을 많이 먹는다. 그래도 이전보다는 낫다.
그리고 언젠가, 이 허우적거림이 진짜 헤엄이 되는 날이 올 거라고 — 지금의 나는 그걸 소망한다.
좌절하더라도 괜찮다. 지금은 소망하며 가고 있으니까.
지금은 그걸로 충분하다.


